
오래된 사물
“과일 먹을 때 쓸 포크가 있어야 해.”
“그건 같이 고르자.”
“그래? 원하는 디자인이 있어?”
“응, 내가 봐야 할 거 같아.”
“그럼 백화점 가 볼까?”
명동 롯데백화점, 신세계 백화점, 신촌 현대백화점, 사당역 태평백화점, 압구정 갤러리아, 현대백화점을 다 돌았다. 남자친구는 마음에 드는 포크가 없다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포크 몇 개를 구입하자고 한 달 넘게 주말마다 백화점을 투어하고 있었다.
한 번은 빨간 투명 플라스틱 손잡이 포크를 들고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 물었다. 그는 선이 아름답지 않다고 퇴짜를 놓았다. 고개를 저을 때마다 눈을 살짝 덮은 머리카락이 얄밉게 찰랑거렸다.
나는 그가 말하는 ‘선’이 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동차 손잡이나 트렁크 라인을 보면 하나로 길게 연결된 그 선이 있다고 했다. 그런 선을 가진 포크를 원한다고 했다. 포크는 자동차가 아닌데 어떻게…? 이해하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은 이집트 성형 문자가 귀로 들리는 듯 했다.
“그럼 여기라도 가 볼래?”
포기하는 마음으로 남대문 도깨비시장으로 손을 잡아끌었다. 좌판 한 구석에서 반짝거리는 스테인리스 포크가 보였다. 고래 꼬리처럼 부드러운 유선형이었다. 한 개를 들고 이런 걸 원하느냐 물었더니, 맞다며 드디어 미소 지었다. 내 기준으론 심심하기 이를 데 없는 심심한 디자인이었다. 어쨌든 포크 찾아 삼만 리의 여정이 끝난 것이 반가워 토를 달지 않았다. 이 남자와 산다는 건 손가락 한 개 만한 포크를 살 때도 의사결정을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과연 그때 잘 생각한 걸까?
선이 아름다운 그 포크는 20년 넘는 세월 동안 20번이 넘는 이사를 거치며 여전히 서랍 속에서 살아남아 여전히 제 몫을 하고 있다. 꼭 마음에 드는 사물은 손에 잡을 때마다 포근한 만족감을 준다.
일상에서 오래오래 함께 한 사물은 생명력을 갖는다. 그런 사물들이 떠나갈 땐 반려동물과 이별할 때처럼 마음이 시큰거린다.
광택이 사라진 더리빙팩토리 국자를 만지작거린다. 코팅이 벗겨진 제품은 이제 수명이 다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휴지통에 넣지 못하고 다시 수저통에 꽂는다. 이 국자로 카레를 떠 밥에 얹어주면 이를 다 드러내고 웃으며 “엄마가 최고야!” 하던 다섯 살 아들 얼굴이 떠오른다.
글, 사진 | 정재경 작가, 더리빙팩토리 창업자
어떻게 하면 더리빙팩토리를 기분 좋게 기억하실까 고민하다, 작가이자 창업자인 제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소소한 에세이를 한 편 씩 보내드리려고 해요. 매주 화요일 저녁에 찾아 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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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마지막 즈음의 낭만
아직 디지털화 되지 않았던 20세기엔 손맛과 마음이 더 많이 느껴지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포크 하나 구입하려면 백화점, 시장을 직접 돌며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비효율적인 시기이기도 했지만 덕분에 우연히 일어나는 낭만도 종종 있었답니다. 에세이를 읽으며 함께 들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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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빈
부산에 계신 분들이라면 디자인셀렉트 숍 리빈을 찾아보세요.
리빈은 해운대에 예쁜 공간이 있답니다.
쇼룸은 아니지만 미리 연락하시면 예쁜 공간에서 더리빙팩토리 제품을 만나보실 수 있어요. :)
더리빙팩토리의 오랜 프렌드십을 가지고 있는 파트너 사이기도 해요.
HAY, 크로우캐넌도 함께 쇼핑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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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먹을 때 쓸 포크가 있어야 해.”
“그건 같이 고르자.”
“그래? 원하는 디자인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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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백화점 가 볼까?”
명동 롯데백화점, 신세계 백화점, 신촌 현대백화점, 사당역 태평백화점, 압구정 갤러리아, 현대백화점을 다 돌았다. 남자친구는 마음에 드는 포크가 없다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포크 몇 개를 구입하자고 한 달 넘게 주말마다 백화점을 투어하고 있었다.
한 번은 빨간 투명 플라스틱 손잡이 포크를 들고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 물었다. 그는 선이 아름답지 않다고 퇴짜를 놓았다. 고개를 저을 때마다 눈을 살짝 덮은 머리카락이 얄밉게 찰랑거렸다.
나는 그가 말하는 ‘선’이 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동차 손잡이나 트렁크 라인을 보면 하나로 길게 연결된 그 선이 있다고 했다. 그런 선을 가진 포크를 원한다고 했다. 포크는 자동차가 아닌데 어떻게…? 이해하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은 이집트 성형 문자가 귀로 들리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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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는 마음으로 남대문 도깨비시장으로 손을 잡아끌었다. 좌판 한 구석에서 반짝거리는 스테인리스 포크가 보였다. 고래 꼬리처럼 부드러운 유선형이었다. 한 개를 들고 이런 걸 원하느냐 물었더니, 맞다며 드디어 미소 지었다. 내 기준으론 심심하기 이를 데 없는 심심한 디자인이었다. 어쨌든 포크 찾아 삼만 리의 여정이 끝난 것이 반가워 토를 달지 않았다. 이 남자와 산다는 건 손가락 한 개 만한 포크를 살 때도 의사결정을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과연 그때 잘 생각한 걸까?
선이 아름다운 그 포크는 20년 넘는 세월 동안 20번이 넘는 이사를 거치며 여전히 서랍 속에서 살아남아 여전히 제 몫을 하고 있다. 꼭 마음에 드는 사물은 손에 잡을 때마다 포근한 만족감을 준다.
일상에서 오래오래 함께 한 사물은 생명력을 갖는다. 그런 사물들이 떠나갈 땐 반려동물과 이별할 때처럼 마음이 시큰거린다.
광택이 사라진 더리빙팩토리 국자를 만지작거린다. 코팅이 벗겨진 제품은 이제 수명이 다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휴지통에 넣지 못하고 다시 수저통에 꽂는다. 이 국자로 카레를 떠 밥에 얹어주면 이를 다 드러내고 웃으며 “엄마가 최고야!” 하던 다섯 살 아들 얼굴이 떠오른다.
글, 사진 | 정재경 작가, 더리빙팩토리 창업자
어떻게 하면 더리빙팩토리를 기분 좋게 기억하실까 고민하다, 작가이자 창업자인 제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소소한 에세이를 한 편 씩 보내드리려고 해요. 매주 화요일 저녁에 찾아 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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